국내여행
부산여행 국제시장
돈마니
2024. 10. 6.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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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은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3가, 신창동2가, 신창동3가, 신창동4가, 창선동2가에 위치해 있는 재래시장이다. 부산의 또다른 대형시장 자갈치시장이나 부평깡통시장, 근래 유명해진 보수동 책방골목 등과도 길 하나 가운데 두고 마주보고 있다. 전부 다 도보로 갈 수 있는 거리이기 때문에, 이곳에 간다면 한꺼번에 가보는게 좋다.
국제시장의 역사
일제강점기 당시 이 곳은 일본인 구역이었으며 조선인 구역은 지금의 동구 일대였다. 일본인 구역이라서 조선인은 출입금지까지는 아니었지만 일제강점기의 한반도 대도시들은 이렇게 주 활동구역이 민족별로 나눠진 경우가 많았다. 가령 서울의 경우 중구 명동, 충무로(혼마찌도오리) 일대가 일본인 구역이었고 야인시대 등에서 그 분위기가 묘사된다. 그러다가 8.15 광복과 함께 수만 명의 일본인이 한꺼번에 고국으로 빠져나가면서 생겨버린 도시 중심부의 빈 공간에 자연스레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도떼기시장이라는 이름이었다.
6.25 전쟁이 터지고 부산이 임시수도로 지정되면서 전쟁에서 안전한 유일한 곳이 되자 전국에서 엄청난 피난민과 미군 구호물자, 밀수품이 부산항으로 유입되었고 물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절에 국제시장은 구호품을 빼돌려 팔면서 그야말로 뭐든지 구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외제품을 주로 취급하던 흔적은 지금도 이웃인 깡통시장 등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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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한국전쟁통에 얼마나 해먹었냐면 미군 하역 물자의 10% 내외가 빼돌려져 망실처리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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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휴전 후에는 미군의 물류체계 시스템이 바뀌어버렸는데 그게 바로 CAU, 즉 컨테이너 시스템이다(...). 원래 2차대전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크레인으로 물자를 일일이 내리던 것을 거대한 철제깡통 상자에 넣고 봉해서 실어버린 것. 현대 해운의 효시는 바로 한국전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미군의 CAU화는 세계 여러 항구의 암시장 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밀수되는 품목은 아니지만 아직도 미군 전투식량(C-Ration)들이 깡통시장 구역에 공급되어 판매되는 중이다(...).
국제시장 대중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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